임종윤·종훈 형제 이사회 장악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 OCI와 통합 반대측이 과반수로 승리
OCI그룹과의 통합 계획 무산 가능성 지배적
장·차남 "기쁠줄 알았는데…아프다"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미그룹 제공]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2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미그룹 제공]

OCI홀딩스와 한미그룹 간 통합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서는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제안한 이사 5명 선임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이날 경기 화성시 라비돌 호텔에서 열린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제51기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이사진 9명 가운데 통합에 반대하는 형제 측 인사가 모친 송 회장이 이끄는 기존 이사 4명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앞서 모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누이 임주현 부회장 측과 형제 측은 각각 6명과 5명의 이사 선임 안건을 냈지만, 이날 주주들은 형제 측 손을 들어줬다.

임종윤·종훈 형제는 둘 다 52% 내외 찬성표를 얻으며 출석 의결권 수 과반의 찬성표를 받아 사내이사 선임에 성공했다.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와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기타 비상무이사, 사봉관 변호사는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아울러 OCI와의 통합에 찬성하는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이우현 OCI 회장 모녀 측 이사 후보 안건 6개는 모두 부결됐다. 추천 이사는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사내이사), OCI홀딩스의 이우현 회장(사내이사), 최인영(기타비상무이사), 김하일(사외이사), 서정모(사외이사), 박경진(사외이사)이다.

이날 주총은 오전 9시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의결권 있는 주식 수를 확인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오래 걸려 개회가 세 시간 반 지연됐다. 표 대결이 매우 치열했기 때문.

사회자는 여러 차례 단상에 올라 "공정한 주주총회를 위해 수원지검 검사가 위임장을 확인하고 있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다. 일부 주주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양측이 확보한 한미사이언스 우호 지분은 모녀 측은 약 43%, 형제 측은 40.57%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모녀 측 우호 지분은 △송영숙 회장(11.66%, 특수관계인 포함) △임주현 사장(10.2%, 특수관계인 포함) △가현문화재단(4.9%) △임성기재단(3%) △국민연금(7.66%)을 합친 규모다.

반면에, 형제 측은 △임종윤(9.91%·특수관계인·디엑스앤브이엑스 포함) △임종훈(10.56%·특수관계인 포함)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2.15%)이다.

당시 양측의 지분 격차가 2.09%포인트(p)에 불과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으며, 이날 주주총회에서 나머지 소액주주의 표심이 장·차남 측의 손을 대거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왼쪽부터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한미그룹 임주현 부회장. [한미그룹 제공]
왼쪽부터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한미그룹 임주현 부회장. [한미그룹 제공]

지난 1월 12일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 계약이 발표되자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를 주도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임주현 부회장 모친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형제는 자신의 추천 인사로 신규 이사진을 구성해 경영권을 교체한 후 OCI그룹과 한미의 통합을 막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송 회장은 지난 25일 형제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중요 결의 사항에 대해 분쟁을 초래했다며 두 형제를 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양측의 골이 더 깊어지기도 했다. 

한미약품 건물 전경. [한미그룹 제공]
한미약품 건물 전경. [한미그룹 제공]

한편, 형제 측의 승리로 OCI그룹과의 통합은 동력을 잃어 불발될 가능성이 커졌다. 형제 측 이사 5명이 이사회에 합류하면 현재의 4명(송영숙·신유철·김용덕·곽태선)보다 과반수 이상이다.

실제 OCI그룹 측은 한미그룹과 통합 작업 중단을 선언했다. 이날 OCI그룹 측 관계자는 “한미사이언스 주주분들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합 절차는 중단된다. 앞으로 한미약품그룹의 발전을 바라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다만, 형제가 통합을 막기 위해 지난 26일 수원지방법원에 제기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기에 모친의 통합 계획을 무산시키려면 법적 다툼으로 이어가야 할 수도 있다.

당시 재판부는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등의 경영권 또는 지배권 강화 목적이 의심되기는 하나, 2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투자 회사 물색 등 장기간에 걸쳐 검토한 바 있다"며 "이 과정을 볼 때 이사회 경영 판단은 존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이날 주총을 마친 후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은 "기쁠 줄 알았는데 기쁘지 않고 마음이 아프다"며 "어머니, 여동생과 같이 가길 원한다"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네버 어게인,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우리 주주 '원팀'은 법원도 이기고 연금도 이겼고, 개인이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힘을 모아 이겼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차남인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는 "앞으로 할일이 많다"며 "우리 형제, 가족이 다 같이 합쳐 발전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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